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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西岳서원<2016-01-15>

mulyoon 2016. 7. 24. 14:09


* 서악서원 :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223 (서악동 615)


경상북도기념물 제19.

조선시대 경주부윤 李楨이 김유신의 위패를 모시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었으나

지방 유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薛聰崔致遠의 위패도 함께 모시게 되었다.

퇴계 이황이 西岳精舍라 이름짓고 직접 글씨를 써 현판을 달았다고 전한다.

처음에는 仙桃山 아래에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 1600(선조33) 서원터의 초사(草舍)에 위패를 모셨다.

1602년에 묘우(廟宇)를 새로 짓고 1610년에 강당과 재사(齋舍)를 중건하였다.

1623(인조1)賜額書院이 되었고 그 뒤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 조치에도 존속하였다.




















서원은 위패를 모신 묘우 3,

유생들이 공부하며 거처하는 시습당(時習堂)과 절차헌(切嗟軒) 5,


회합 및 강론장소인 조설헌 5,

제수를 마련해두는 전사청(典祀廳) 3,

물품을 관리하는 고자(庫子)들의 거처인 고자실 4,


누각인 영귀루(詠歸樓), 도동문(道東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마다 2월과 8월 중정(中丁:음력 중순에 드는 丁日)에 선현의 뜻을 받드는 향사를 지낸다.


      강학 장소를 시습당,

     서원 교수진이 거처하던 곳으로 오늘날로 보면 교무실인 양쪽 방을 진수재와      성경재,

     학생이 유숙하는 장소인 동재를 절차헌, 서재를 조설헌,

     누문 영귀루, 문을 도동문이라고 명명했다고 합니다.

     서원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00(선조 33) 경주 부윤 이시발이 옛 서원 터에 초가 집 만을 짓고 위패를     봉안했는데

     영귀루중건기에 의하면

     그 후 1602(광해군 8)에 부윤 최기가 사당, 제실, 강당, 장서실 등을 중창하였다.

     1623(인조 1)에 최동언 등의 청원으로 서악(西岳)’이라는 사액을 받았으며,

     1646년 영귀루를 중건했습니다.

     서악서원은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타버렸는데

     현재의 서악서원이라고 현판에 쓰인 글씨는 당시의 명필로 알려진 원진해 선생이 쓴 것이다.

     현재 서원에서는 예전과 같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中丁日)에 향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출처 : 배낭을 메고...
글쓴이 : 무 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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